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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 안내 우리 대학의 역사와 전통을 테마 분류하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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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관"가르침을 베풀다"

  • Ⅲ-1육영의 꿈 실현
  • Ⅲ-2교육에의 무한투자
  • Ⅲ-3꿈의 결실
  • Ⅲ-4미래준비 교육

육영의 꿈 실현

교육의 꿈

이병익 박사의 육영의 꿈은 거제도 전쟁포로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의 폐허를 바라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교육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이다. 교육만이 나라를 부유하게 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동방산업의 사장 재직 시에 회사 내에 교육시설을 마련하여 근로자들을 교육시키기로 결심하면서 실현된다. 마침내 그 결실로 1977년 혜천여자 중고등학교를 회사 내에 설립하게 되었다.

육영사업의 초석

  • 동방산업부설여자중·고등학교

    1976년 동방산업 부설 중·고등학교를 한 학급씩 개설했다. 집이 가난하여 공부할 수 없었던 소녀들은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게 된 사실이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당시 대기업에 한 두 개의 산업체 학교가 있었을 뿐 중소기업에서는 이병익 박사가 처음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모든 수업료와 제반 비용은 무료였다.


주경야독의 환경 조성

  • 혜천여자중·고등학교

    수출증대 산업표창을 받는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약속했다. “여직원들이 일하면서 공부를 하는데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재벌도 못하는 것을 이병익 회장이 하고 있군요. 동방산업 부설학교에 정식인가를 내주겠소.”이를 계기로 1977년 혜천여자 중고등학교를 회사 내에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근로자들을 위한 주경야독의 교육시설 허가는 관련 법규가 없었으나 대통령특별법으로 이를 관철하여 근로와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근로자들은 주경야독을 통해 경제적 문제의 해소와 교육의 만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육에의 무한투자

최고의 명문학교 설립

  • 동방여자중·고등학교

    이병익 박사는 학교법인 신성학원 설립 허가를 받아 동방여중과 동방여고를 설립하기로 하고 교사를 건축하기 위해 복수동 280번지 일대의 학원 부지에 대한 토목공사에 착수했다.
    1980년 3월, 중학교 4학급, 고등학교 5학급의 동방여자중·고등학교가 개교했다.
    "이사장으로서 격려사를 드리려고 하니 이 학교를 지으려고 불도저로 처음 땅을 밀 때의 설렘과 밤 늦게까지 학교부지를 소요하며 내 평생의 숙원이던 육영사업을 시작하겠노라고 하나님께 서원하던 그 때의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풀과 나무의 씨는 흙 위에 떨어진 후 따스한 봄날 수분만 공급받으면 언제든지 싹이 틉니다.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며 그 다음부터는 제 힘으로 자랍니다. 병아리도 물고기도 곤충들도 일단 태어나기만 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자라납니다." (동방여자중고등학교 개교식 격려사 중)

최고가 아니면 안 되지

  • ‘뭐든지 하면 최고로 한다’ 는 이병익 박사의 신조에 따라 동방여고 건물은 최신식으로 지어졌다. 기업 경영으로 버는 수익금을 육영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병익 박사는 아낌없이 투자했다.
  • 본관은 건평 1,993평 54실의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다량의 장서를 구비한 도서관, 여성 예절의 산실인 4층 규모의 생활관, 최신 기자재를 구비한 방송실, 방음이 철저한 피아노 연습실을 여러 개 갖춘 음악실, 많은 종류의 석고상과 이젤 등 충분한 수업도구를 갖춘 미술실 등등 자랑거리가 즐비했다.
  • 특히 첨단기자재를 갖춘 방송실을 내방객들의 부러움을 샀다. 완벽한 방음벽을 갖춘 녹음실과 스테레오 타입의 대형 TV와 비디오 시설 등 다양한 첨단 설비를 중고등학교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움이었다.

스승과 제자

  • 스승과 학생

    이병익 박사는 면접을 볼 때마다 교사 지원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 잘 섬기고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것을 약속할 수 있습니까?"
    이병익 박사는 교사들에게 "소신껏 일하되 똑바로 하라"로 당부했다.
    이병익 박사는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기도 많이 해라. 실수하지 말아라. 안되면 되게 해라. 무에서 유를 창조해라"라고 당부하곤 했습니다.

꿈의 결실

학교부지 헌납

  • 캠퍼스 조성

    기업 이익의 육영사업 환원이라는 명제 아래 복수동 현 캠퍼스 부지 20만평을 헌납하여 대학 캠퍼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울러, 최신식의 건물과 최첨단의 실습기자재를 구비하여 최고의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는 학문의 전당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 장학사업

    학원 산하 재학생과 주변 대학의 성적이 우수하고 신실한 2,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적극 후원하는 재단법인 혜천장학회를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복수동 캠퍼스

  • 복수동으로의 이전

    대전간호전문대학을 복수동으로 이전하면서 최신식의 건물을 건축하였고, 첨단의 실습실 완비와 내실있는 학사 운영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명문대학의 입지를 살려나갔습니다. 전망있는 학과의 신설과 우수 교수진을 확보하여 중부권 최대 종합전문대학의 면모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대전간호대학을 인수하자마자 도시 외곽에 새로운 캠퍼스를 짓기 위한 부지를 복수동에 마련하고, 새로운 대학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이사들과 교수들, 학생들, 간호대학 동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다음 정감 어린 목소리로 연설을 하였다.

    "먼저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지난 동족상잔의 전쟁 동안에 수없이 생사를 넘나들었습니다.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 완전히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런 중요한 교육기관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비전을 주셨는데 이 학교를 이 나라의 중심부에서 가장 모범적인 교육기관으로 세우라는 비전입니다. 지금 눈을 감으면 2,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큰 캠퍼스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중부권 최고의 대학

  •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대전과학기술대학교는 중부권에 위치한 최대 종합전문대학으로서 4,500여 명의 학생이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는 교육의 도장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를 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건학이념의 정신을 잘 구현해 내고 있는 교육의 장입니다. 대학 캠퍼스의 모든 조경은 학교건물 건립 시 이병익 박사의 조경에 대한 혜안으로 꾸며져 4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캠퍼스로 소문난 곳이기도 합니다.

    1988년 10월과 11월에 4개 학과 증설을 인가받은데 이어 계속 증설 허가를 받아 1990년은 11개 학과 132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학생이 증가한 만큼 시설 투자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88년 12월에 어남동 연수원 건물(248평)을 준공했고 1989년 5월에 혜천관(1,046평), 신성관(2,494평)을 준공하였습니다. 또한 2004년 5월에 중부권 최대의 중앙도서관 및 진리관의 준공과 2011년 2월에는 800명을 수용하는 홍은학사의 완공을 통하여 명실공히 종합전문대학으로서의 면모를 완벽히 갖추게 되었으며 현재 1개 학부 5개 개열 10개 전공, 29개 학과를 갖춘 대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미래준비 교육

하나님의 소명

  •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혜천(惠泉)은 이병익 박사의 아호로 은혜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건학이념 경천(敬天), 위국(爲國), 애인(愛人)은 기독교 사상을 담고 있어 은혜의 샘의 혜천(惠泉)과 잘 어울립니다. 학원의 복음화를 이룩하라는 이병익 박사의 사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었습니다.

    경천은 만유를 주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 인간들을 말씀의 범주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러한 경외심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라는 의미이다.

    위국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에 대한 밑바탕으로부터의 봉사와 사랑을 요구하는 이념이다.

    애인은 공동체적 집단생활을 의미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어 가장 큰 핵심은 바로 이웃 사랑에 있다. 그리스도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말로 하는 수동적인 사랑이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사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