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이야기
생애관"동방의 빛"
- Ⅰ-1혜천의 유품관
- Ⅰ-2고난 속에서 찾은 빛
- Ⅰ-3끝없는 성장
혜천의 유품관
절망의 산을 움직인 "겨자씨 믿음"
혜천 이병익 박사의 성공의 열쇠는 그가 가진 "겨자씨 믿음"이었으며, 그것은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영혼의 감화를 받아 생겨난 것이었다. 유년시절 혜천은 "내게 힘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빌립보서 4:13)는 성경말씀을 확고히 받아들였다. 한국전쟁 중에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특히 전쟁포로 신분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던 때에도 혜천은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베풀어 주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과 소명을 항상 간직하였다.
고난 속에 찾은 빛
포로수용소에서 세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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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에서 세운 꿈
6.25 동란이 일어나자 청년 혜천은 공산당의 강제 징집으로 전쟁에 참가하였으나, 전쟁의 참혹함과 공산당의 거짓 선전을 부정 인민군 부대에서 탈출 후 전쟁포로로 잡히다.
-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며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를 올리다.
- "자유의 몸이 된다면 기업을 이루고, 기업을 통해 육영의 장을 열어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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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제 몸과 마음의 자유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전심 전력을 다해 일하여 성공하는 기업을 이룩하게 하소서
기업을 통해 얻은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헌신 하겠나이다. 육영의 장을 열어 학원을 통해 복음화를 실현시키고 교회를 건립하여 봉헌하며 국내는 물론 세계선교의 열매를 아름답게 수확하여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주님의 섭리대로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가족의 생계를 위한 헌신
‘하수구 청소면 어때 가족들 배부르게 하는데, 내 가족이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생계유지를 위해 하수구를 치우는 막노동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간장을 배달하면서도 성실함을 잃지 않았다. 주위로부터는 근면, 성실하고 정직한 일꾼으로 평가받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최우선으로 하였으며 교회에서의 봉사,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헌신하여 전도유망한 믿음의 청년으로 인정받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빛의 증인의 되었다.
성공의 열쇠 신용
혜천은 새벽 3시 30분이면 일어나 자전거에 간장을 싣고 목포 시내를 누볐다. 혜천은 성공의 열쇠는 신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피난민과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신용으로 간장을 판매하여 판매왕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자! 꿈을 갖자! 신용을 잃지말자’ 간장을 배달하며 혜천은 이렇게 매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렇게 일의 신성함을 감사로 받아들였기에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인정받았고 그러한 정신이 기업을 이루고 학원을 경영하는 초석이 되었다.
나일론사업으로 대전입성
신앙의 힘과, 성실과 근면의 생활화로 청년기의 고난을 넘어 기업가로 성장한 혜천은 부산에서부터 나일론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산과 목포를 오가는 중에 대전에 들리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인해 대전에서의 사업 발판을 구상하게 되었다. 남한의 중심부에 있는 대전은 상거래에 있어서도 중심이 되었기에 새로운 도전을 이룩할 이상적인 도시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혜천에게 물건을 사서 팔면 장사가 잘돼!’ 혜천과 거래한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이 모든 것이 신용과정직으로 일구어 낸 결과였다.
주께 영광 돌리는 사업 ’동방상회’ 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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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상회 개업
대전에 이사 온 지 1년 만에 단독 가게를 갖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열면서 먼저 인사하고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번듯하게 단독가게를 열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빛’이란 의미의 동방상회로 명명하다.
끝없는 성장
비전 실현을 위한 동방산업’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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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동방산업을 창업하다.
나일론 판매를 기점으로 대전으로 이주하면서 새롭게 확장한 포목상과 의류사업의 노하우를 일찍이 간파하여 쌍미섬유의 사장과 원미섬유의 부사장을 맡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1969년 마흔의 젊은 나이에 차후 의류업계의 총아로 떠오르게 될 동방산업을 설립하였습니다.
1969년 5월 1일, 해 뜨는 동쪽이라는 의미를 가진 동방산업을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한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먼저 하나님께 새벽제단을 쌓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19시간을 일하는 젊은 사장이었습니다. 그러한 근면과 성실함이 고스란히 동방산업의 발전에 스며들어 기업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고 모든 생산품은 해외로 수출하는 최우수 상품을 생산, 국내외 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평생의 생활신조 - 새마을운동
혜천은 새마을운동 정신을 기업의 신조로 삼았습니다. 새마을운동 정신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상은 높게 갖고 현실은 착실하게 살자.
둘째 겉치레보다 실속 있는 생활을 하자.
셋째 빚지기를 두려워하고 저축하는 마음을 기르자."
혜천은 이 내용을 프린트하여 전 직원에게 나눠주고 책상에 붙여 놓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아침 조회 때면 전 직원에게 새마을운동 정신을 복창하게 했습니다.
새마을운동 정신은 혜천의 평생 생활신조가 되었고, 누구를 만나든 새마을운동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직원들을 만나면 불쑥 세 가지 신조를 물어보면서 "착실하고 실속 있게 생활하면서 저축하라"고 다독이곤 했습니다.
이러한 실천 정신을 바탕으로 동방산업은 1977년 11월 8일 공장 새마을운동 우수업체로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속의 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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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곳곳에 공장 설립
해외 사업체의 확장으로 사이판 현지에 미국 수출을 겨냥한 의류수출 생산 공장인 마리아나 패션(Mariana Fashions, INC)을 설립했고 1만여 평을 임대하여 공장을 세웠는데 직원이 1200여명에 이르렀습니다. 1990년에는 인도네시아에 유럽수출을 겨냥한 의류생산 공장 동방아시(P.T.DONGBANG ASHI)를 현지에 설립하여 조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어 글로벌 체제의 사업체 확산을 통해 중앙 아메리카에 위치한 과테말라, 온두라스에도 현지 생산 공장을 설립했는데 그 중에서도 과테말라 공장의 가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과테말라 동방패션에서는 와이셔츠, 스카프, 바지 등 모든 종류의 의류를 생산하여 제이씨페니(JCPenny), 씨어즈, K마트 등을 통해 미국전역에 판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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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명예영사
1989년에 과테말라 정부에서는 이병익 회장을 과테말라 명예영사로 위촉했고 2002년에 과테말라 마리아노 갈베즈 대학교에서는 이병익 회장에게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수여했다. 혜천대학과 마리아노 갈베즈 대학교는 자매결연을 맺었고, 혜천은 마리아노 갈베즈 대학교에 장학금과 많은 도서를 지원하기도 하였다.